명작을 꿈꾸며

송구영신

조각목 기자 | 기사입력 2019/12/29 [10:28]

명작을 꿈꾸며

송구영신

조각목 기자 | 입력 : 2019/12/29 [10:28]

[보스타임-조각목기자] 한 해가 저물어간다.

 

인생이 예술이라면 우리 모두는 작가들이다. 명작을 남기려고 발버둥했던 올 한 해에 몇 작품이나 손꼽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의도를 갖고 시도했던 것들에서 작품이랄게 뭐가 있을까? 하루 하루 펼쳐진 날들을 작품이라 한다면 내 작품은 과연 어떤까? 개인을 넘어, 속한 공동체와 국가는?
 
처한 환경에 따라 보는 것과 감동이 각각 다르기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파적일 수 있는 것들인 몇 가지만 생각하고자 한다.
 
2019년 대한민국은 미세먼지 가득한 잿빛이었다. 부의 양극화,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 높은 청년 실업률, 중단없는 정쟁, 그리고 불안한 한반도 주변정세 등이 그런 화면을 구성하고 있었다. 굵직한 구조물 위에 필터를 씌운듯한 미세먼지는 사시사철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원인이 뭐냐?  네 탓이냐?  내 탓이냐? 라고 물었지만 명확한 답은 없고 나름 할 수 있는 방법을 조치해 보지만 새발에 피였다. 이 모든 풍경을 한방에 날린 것은 저기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이제 삼한사온은 책에서나 찾아봐야 때가 되었다. 미세먼지를 추위보다 더 피하고 싶어하고 웬만하면 입마개를 하고 사는 게 수월하게 여겨지는 일상이다.
 
이런 날에 무슨 명작을 기대할까? 과연 그렇게 비관적인가? 그렇지 않다. 해는 여전히 떠오르고 바람은 여전히 불어온다. 가끔은 해가 있기는 한가? 싶지만 그건 순전히 자기생각이다. 해는 먼지넘어 안개 넘어 중천에 자리잡고 있다. 그 해가 기우는 저녁 즈음에는 뿌연 안개 사이로 작품을 만든다. 중천에 떠 있을 무렵의 쾌청함이 철조망을 넘어 금강산을 보게 만들었다면 기우는 해는 서해 안면도의 수평선 장관을 만들어낸다. 잿빛 미세먼지 조차 작품에 일조하게 만든다. 장관이다. 
 
무엇이 작품을 만드나? 화면을 붙들어 두는 버튼인가? 화면을 화면이게 만드는 렌즈인가? 그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고도 그 너머에  있는 풍광인가? 궁색하지만 난 잘 모른다고 하겠다. 내 잣대로 하면 이게 멋져라고 할테지만 그게 어디 모두가 멋지다고 할겐가? 그저 나 혼자 좋아라 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면 명작은 없다고 하겠다. 그저 모두가 붙들어 놓은 화면은 다 설명되지 않았지만 그 나름으로 작품이 될 이유가 있었던게 아닌가?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해 아쉬움은 뒤로 하고 다가올 날의 광경을 기다려 보자.
 
무엇보다 2020년엔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다.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꽃이라 할만한 선거를 통한 국회의원 선거이다. 최근들어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꼴볼견을 넘어서 존재를 부정당하는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또 뽑아야 한다면 갈수록 목민사상은 없고 사익만 추구하는 자들의 안방으로서 국회가 되지 않도록 신중한 권리행사가 필요하다. 하루 아침의 천지개벽은 없겠지만 한 걸음이라도 진보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역사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이런 저런 사건과 일들이 펼쳐질 2020년은 설레임보다 긴장감이 생긴다. 개인적인 성향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이 그렇지 싶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될 한 해, 펼쳐질 상황 앞에 망설임 없이 셔터를 눌러보자. 세월이 조금 지나고 또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서 명작이 될지 알겠는가? 그대는 다만 삶의 카메라를 들고 순간순간 셔터만 눌러보라. 예기치 못할 명작은 그런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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